2026년 8월 마지막 날, SK온은 미국 에너지저장장치(ESS) 기업 네오볼타파워와 5년간 총 9GWh 규모의 LFP 파우치 배터리 셀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연내 9GWh 규모의 추가 물량이 더해질 수 있어 총 협력 규모는 18GWh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거의 동시에 삼성SDI는 ESS 통합업체와 수조 원 규모의 3년 LFP 배터리 셀 공급 계약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연간 공급량은 수 GWh에 달한다.
앞서 7월 중순, 또 다른 한국 배터리 대기업 LG에너지솔루션은 구글의 글로벌 최대 ‘태양광+ESS’ 프로젝트의 배터리 수주를 확보했다. 이 프로젝트의 총 ESS 용량은 2.9GWh로 계획되어 있으며, LG에너지솔루션이 북미에서 현지 생산한 LFP ESS 셀을 사용해 모든 ESS 배터리를 단독 공급한다.
두 달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삼원계 노선에 주력해 온 한국 3대 배터리 기업이 ESS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수주에 나서며 일제히 LFP로 전환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의 배경에는 ESS 분야 진출을 통해 전기차 시장의 전반적인 점유율 하락을 상쇄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전기차 배터리 둔화, ESS 분야로 후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한때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톱10의 핵심 기업이었으나, 최근 몇 년간 시장 점유율이 더욱 축소되었다.

한국 조사기관 SNE리서치의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한국 3사는 글로벌 시장 점유율 15.4%를 기록하며 전년 대비 3.3%포인트 하락했다.
2026년 1분기 이들의 시장 점유율은 15.6%로 전년 동기 대비 2.1%포인트 하락했다. 그중 삼성SDI의 설치량은 전년 동기 대비 27.7% 감소하며 톱10에서 밀려났다.
2026년 상반기에는 성장세가 크게 둔화되었다. 삼성SDI가 톱10에서 이탈한 후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만이 잔류했으며, 두 회사의 합산 설치량은 71.6GWh였다. 이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전년 동기 대비 13.3%에서 11.7%로 축소되었다.
중국 시장을 제외하더라도 이들 3사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2025년에는 36.3%로 전년 대비 7.4%포인트 하락했다.
2026년 1분기 이들의 시장 점유율은 29.6%로 전년 동기 대비 8.3%포인트 하락했으며, 3사 모두 설치량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2026년 상반기 이들 기업의 합산 설치량은 74.3GWh(전년 대비 6.3% 감소)에 그쳤으며, 합산 시장 점유율은 37.2%에서 27.6%로 하락했다(9.6%포인트 감소).
SNE리서치는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전력용 배터리 부문 부진이 주로 북미·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전기차 판매 부진에 기인한다고 분석했다.
전력용 배터리 시장 점유율이 하락한 가운데,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ESS 부문에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시장조사기관 EVTank, EV경제연구원, 중국전지산업연구원이 공동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ESS 배터리 출하량은 651.5GWh(전년 대비 76.2% 증가)에 달했다. 중국 기업들의 출하량은 614.7GWh로 글로벌 출하량의 94.4%를 차지했다. 특히 2025년 글로벌 ESS 배터리 출하량 상위 10개 기업은 모두 중국 기업이었으며, 2024년 상위 10위 안에 들었던 한국 기업 2곳은 완전히 밀려났다.

SNE리서치 데이터에 따르면, 2026년 상반기 글로벌 리튬 배터리 ESS 출하량은 461.3GWh로 전년 동기 269.7GWh 대비 71% 증가했다. 이 중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상위 10위권에서 밀려나 각각 11위와 12위를 기록했다.
EVTank는 한국 기업들이 NCM 및 NCA 삼원계 리튬 배터리에 의존한 것이 ESS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후퇴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전력용에서 ESS로 전환, LFP에 집중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LFP 대규모 전환 배경에는 또 다른 중요한 외부 요인인 미국 정책이 자리 잡고 있다.
EVTank 데이터에 따르면, 2025년 LFP 배터리는 글로벌 ESS 배터리의 95.4%를 차지하며 절대적인 우선 선택지가 되었고, 중국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더욱 확대되었다.
그러나 미국의 공급망 규정에 따르면 ESS 투자 세액공제를 받기 위해서는 '우려 대상 외국 기업'(중국 기업 포함)의 배터리 부품 및 소재 비중을 일정 기준 이하로 낮춰야 한다.
이로 인해 한국 배터리 기업들에게 기회가 열렸고, 북미 지역에서 ESS 부문 수주가 급증했다.
수주를 확보했으니 생산 능력은 어디서 나올까? 한국 배터리 3사는 같은 답을 내놓았다. 전력용 배터리 생산 라인을 ESS용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8월 18일, LG에너지솔루션의 미국 미시간주 랜싱 배터리 공장이 공식 가동을 시작했다. 연간 생산능력 목표는 35GWh를 초과한다. 랜싱 공장은 ESS 및 전기차용 대형 배터리를 생산하며, ESS용 LFP 배터리 셀도 포함한다.
7월 30일, LG에너지솔루션은 2026년 2분기 실적 발표에서 GM과의 합작사 Ultium Cells와 혼다와의 합작사 L-H Battery가 모두 ESS 배터리 셀 양산에 성공적으로 돌입했다고 밝혔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6년 말까지 글로벌 ESS 생산능력을 60GWh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며, 이 중 50GWh 이상을 북미에 집중 배치할 예정이다. 회사는 연말까지 북미 8개 공장 중 5개를 ESS 배터리 생산 체제로 전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8월 11일, 삼성SDI는 GM과의 합작사인 Synergy Cells의 지분 49.99%를 인수했다고 발표했다. 현재 건설 중인 이 배터리 공장은 당초 27GWh 규모를 목표로 했으며, 2027년 양산 개시가 예정되어 있었다.
삼성SDI가 Synergy Cells를 완전히 인수함에 따라, 이 공장은 완공 후 ESS 배터리 생산을 우선시하여 급성장하는 미국 ESS 시장에 신속히 대응할 방침이다.
SK온도 움직이고 있다. 한국에서는 서산 공장의 6GWh 생산능력 중 3GWh를 LFP ESS 생산 라인으로 전환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조지아 공장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 라인 일부를 LFP 용도로 전환 중이며, 2026년 하반기 양산이 예상된다.
SK온은 ESS 사업 확장을 위한 탄탄한 생산능력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미국 내 약 100GWh의 생산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는 단독 공장인 SK Battery America와 SK온 테네시, 그리고 현대자동차그룹과의 합작사인 HSBMA가 포함된다.
세 한국 배터리 기업이 전력용 배터리 라인을 ESS 용도로 전환하고 있으며, 북미를 생산능력 배치의 핵심 거점으로 삼고 있음이 분명하다.
결론:
한국 배터리 3사의 LFP 전환은 이미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26년 상반기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의 북미 시장 점유율 합계는 전년 동기 13.9%에서 19.7%로 상승했다. 가장 빠르게 움직인 LG에너지솔루션은 2026년 상반기 ESS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4.6배 급증했으며, 신규 수주액이 3조 원을 넘어서며 전체 매출의 20% 이상을 기여했다.
그러나 초기 승리가 근본적인 우려를 없애주지는 않는다. ESS 시장 호황이 장기적 추세인가, 아니면 일시적 광풍인가? 전력용 배터리 수요가 회복되면 전환된 생산라인이 신속히 되돌아갈 수 있는가? 미국 정책의 "기회의 창"이 갑자기 닫히지는 않을까? 가장 중요한 점은 LFP가 한국 기업들에게 한 번도 강점이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LG에너지솔루션 북미 지역 대표 로버트 리는 최근 이렇게 인정했다. ESS로의 전환은 복잡하며, LG가 경험이 적은 LFP 화학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3대 배터리 거물들의 이번 전환은 의심할 여지 없이 위험이 큰 도박이다. 더 이상 단순한 사업 조정이 아니라 ESS가 그들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이 싸움의 결과는 한국 배터리 산업의 미래를 다시 정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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