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주요 금 보유국의 순위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눈에 띈다.
5위인 러시아는 금 보유량을 줄곧 확실히 자국 손안에 쥐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이 자국의 외환보유액을 “강제 동결”한 경험으로 더욱 똑똑해진 셈이다.
4위인 프랑스는 1960년대 중반 이미 미국 뉴욕에 보관했던 자국 금 대부분을 파리로 되가져왔다. 당시 샤를 드골 대통령이 브레턴우즈 체제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2위와 3위인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올해 들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연준 공격과 지정학적 불안이 거듭되면서, 뉴욕에서 금을 되찾아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내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1위인 미국은 현 행정부가 연준 금고에 실제 얼마나 많은 금이 있는지조차 모를 수 있다.

(세계 금 보유 순위, 출처: Trading Economics)
금이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갈수록 커지는 오늘날, 이 주요 상위 5개국 금 보유의 안전성을 둘러싼 최근 동향은 시사하는 바가 분명 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의 전통적 서방 우방국들마저 자국의 대미 보관 금에 점점 더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여러 정황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과 이탈리아 여론은 금 “되찾기”에 더욱 적극적이다.
독일 좌파당 출신으로 현재 좌파 포퓰리즘 정당 BSW에 합류한 파비오 데 마시 전 유럽의회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격동기에는” 더 많은 금을 유럽 혹은 독일로 이전하는 것을 지지할 “강력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금협회에 따르면 독일과 이탈리아는 현재 각각 3,352톤과 2,452톤으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와 3위의 금 보유국이다.
동시에 두 나라는 보관소로서 맨해튼의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크게 의존하며 자국 금의 3분의 1 이상을 미국에 보관 중이다. 업계 추산에 따르면 이들이 뉴욕 연준에 맡긴 금의 현재 총 시장 가치는 2,450억 달러를 넘는다.
대양을 사이에 둔 미국에 금을 보관하는 것은 주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역사적 이유에서 비롯되었으며, 뉴욕이 런던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금 거래 중심지 중 하나로서 오랜 위상을 지닌 점을 반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트럼프의 예측 불가한 정책과 더 넓은 지정학적 혼란은 최근 이 두 유럽 국가에서 자국 금 보유액의 안전에 대한 공개 논의를 더욱 불러일으키고 있다.
독일에서는 금 본국 송환 안이 좌우 정파를 가리지 않고 점점 더 폭넓은 지지를 얻고 있다. 기독교사회연합당(CSU) 출신의 유명 보수 인사 페터 가우바일러는 최근 독일 중앙은행이 국가 금 보유를 지킴에 있어 “지름길을 택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해외 금 보관이 지난 10년간 더 안전하고 안정적이게 되었는지를 물어야 한다”며 “답은 자명하다(아니오). 지정학적 위험 때문에 세상은 더 불안전한 곳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유럽납세자협회도 최근 독일과 이탈리아의 재무부 및 중앙은행에 서한을 보내 정책 입안자들이 금 보관소로서 미 연준에 의존하는 방식을 재고할 것을 촉구했다고 전해진다. 미하엘 예거 유럽납세자협회장은 “트럼프의 미 연준 독립성 침해를 깊이 우려한다”고 말했다.
예거 회장은 “우리의 권고는 독일과 이탈리아의 금을 본국으로 송환하여 유럽중앙은행이 언제든지 완전히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지난 4월 워싱턴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기 전, 유명 경제 평론가인 조르자 멜로니(주: 총리와 동명이인으로 추정되며, 원문대로 기재)는 현지 신문 《일 파토 퀴디아노》에 “이탈리아 금 보유량의 43%를 믿을 수 없는 트럼프 행정부 아래 미국에 두는 것은 국가 이익에 매우 위험하다”고 기고했다.
해결해야 할 ‘역사적 과제’
사실 유럽 국가들이 금 보관소로 미 연준에 의존해 온 점은 오래된 논란거리다.
2차 세계대전 후 처음 20년간의 경제 호황 속에 서유럽 국가들은 막대한 금 보유를 축적했다. 당시 이들은 미국에 대해 상당한 무역흑자를 누렸다. 1971년까지 달러는 브레턴우즈 고정환율제 아래 미 연준을 통해 금으로 교환할 수 있었다. 대서양 건너편에 귀금속을 보관하는 일은 소련과의 잠재적 전쟁에 대비하는 안전판으로 많은 유럽 나라가 받아들이기도 했다.
프랑스는 그중 처음으로 “깨어난” 듯하다. 1960년대 중반 프랑스는 해외 금 보유액 대부분을 파리로 되가져오기 시작했는데, 이는 샤를 드골 대통령이 브레턴우즈 체제에 대한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는 2010년 시작된 풀뿌리 운동 “우리 금을 되찾자”가 등장하고서야 독일 중앙은행의 정책이 완전히 바뀌었다. 2013년 독일 중앙은행은 금 보유량의 절반을 자국에 보관하기로 정하고, 674톤의 금을 파리와 뉴욕에서 프랑크푸르트 본부로 이전했다. 이 고도의 보안 작전에는 무려 700만 유로의 비용이 들었다.
그러나 현재도 독일 중앙은행 금 보유량의 무려 37%가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그대로 보관돼 있다.
이에 대해 극우 성향의 ‘독일을 위한 대안당’(AfD) 소속 의원이자 해당 풀뿌리 운동의 시작을 이끈 페터 뵈링거는 “우리가 (금 본국 송환 제안을) 시작했을 때 우리는 음모론을 퍼뜨린다고 비난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뵈링거에게 금을 본국으로 가져와야 하는 주된 이유는 현 미국 행정부와 전혀 무관하다. “금은 중앙은행의 최후 보루이며, 따라서 어떠한 제3자 위험에도 영향받지 않게 보관돼야 합니다. 심각한 위기 시에는 법적 소유권만이 아니라 물리적 통제권이 진짜 중요해집니다.”
이탈리아에서는 조르자 멜로니가 이끄는 극우 정당 ‘이탈리아 형제들’이 2019년 야당 시절, 이탈리아 금 보유액의 본국 송환을 위해 로비 활동을 벌였다. 멜로니 대표도 당시 집권하면 이탈리아 금을 본국으로 되가져오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2022년 말 총리로 취임한 이후 멜로니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무역전쟁 격화를 피하려는 이유도 있어 이 문제에 지금껏 침묵을 지키고 있다.
따라서 독일과 이탈리아 모두에서 금 본국 송환 요구가 정계와 여론 양쪽에서 거세지고 있지만, 이것이 실제 행동으로 바뀔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최근 ‘이탈리아 형제들’ 소속 파비오 람펠리 의원은 이탈리아의 금이 “역사적 친구이자 우방”에 의해 보관 중이기 때문에 “지리적 위치”는 “상대적 중요성”만 지닌다는 것이 당의 현 입장이라고 밝혔다.
독일의 베테랑 투자자 베르트 플로스바흐도 “지금 수고를 들여 금을 본국으로 송환하는 것은 대미 관계가 나빠지고 있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며 비슷한 논리를 폈다.